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릴리앙 튀랑 (문단 편집) == 평가 == 국가대표 커리어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맹활약하여 조국의 우승과 동시에 튀랑 본인은 수비수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대회 올스타팀 선정 및 브론즈볼을 수상하였고, 2년 후 [[UEFA 유로 2000|유로 2000]]에서도 맹활약하여 조국의 우승과 동시에 튀랑 본인도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전성기가 많이 지난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맹활약하여 조국의 준우승 및 대회 올스타팀 선정, 2006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기까지 하였다. 클럽 커리어는 국가대표 커리어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AC 파르마]]에서 [[파비오 칸나바로]]와 함께 센터백 듀오 그리고 후방의 [[잔루이지 부폰]]과 함께 엄청난 수비 라인을 형성하면서 리그 2위까지 올려놔, 파르마를 세리에 [[7공주(축구용어)|7공주]]까지 등극시키게 만들었다. 당시 2,200만 파운드의 수비수 이적료 기록을 경신하면서 유벤투스로 이적해서도, 주전으로 리그 2연패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는데에 큰 공헌을 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무엇보다 튀랑의 장점은 피지컬, 체력, 스피드, 태클, 압박 수비 뿐만 아니라 점프력을 기반으로 한 공중 장악 능력도 뛰어나며 기복도 없어서 무결점의 짐승 수비수로 평가받았다는 점이다. [[레 블뢰]]에서는 라이트백으로 맹활약하였지만, 빅리그 클럽에서는 센터백으로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만능 수비수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윌리 사뇰]]은 [[마르셀 드사이]]가 은퇴하고 [[윌리엄 갈라스]]가 센터백으로 정착[* [[UEFA 유로 2004|유로 2004]] 때는 정작 갈라스도 [[미카엘 실베스트르|실베스트르]]에 밀려 라이트백으로 출전했다.]한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년 월드컵]]부터 비로소 주전으로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대표팀에서나 기라성같은 선배들 덕에 기회를 못 받았을 뿐이지 사뇰 역시 분데스의 거함인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라이트 백으로, 유럽 정상급의 실력자로 정평이 나있었다. 특히 킥 능력은 선배 튀랑보다 한 수 위였다.] 이때 사뇰의 나이는 29세. --그나마 사뇰은 [[뱅상 캉델라|캉델라]]보다는 나았다-- 또한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이자 당시 양대 산맥이던 [[카푸]]의 브라질과의 맞대결에서도 메이저 대회 본선이든, 친선경기이든 대부분 이길 정도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튀랑은 라이트백과 센터백을 둘 다 잘한 것이 오히려 평가에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역대 베스트 11을 뽑거나 시대를 초월해 축구 선수들의 순위를 매기게 되면 수비수나 골키퍼들은 공격수들에 비해 손해를 보게 되므로 포지션에 따라 선수들을 평가하게 되는데 튀랑은 센터백과 라이트백을 둘 다 잘해 한쪽에만 넣을 수 없기에 평가가 뭔가 애매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럼에도 라이트백에 놓을 때 튀랑과 비견되는 선수들이 [[카푸]], [[다니 알베스|알베스]], [[필립 람|람]], [[베르티 포크츠|포크츠]] 등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들임을 생각하면 대단한 수비수인건 맞다. 그러면서도 센터백에서 평가받을 때도 역대급 센터백으로 평가받는다. 센터백으로는 동시대 세계 최고의 센터백들로 평가받는 [[파비오 칸나바로|칸나바로]], [[알레산드로 네스타|네스타]], [[카를레스 푸욜|푸욜]], [[존 테리|테리]]와 대등한 반열에 올라갈 수 있는 선수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